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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O*... 추기경님, 저도 웃으며 투병하겠습니다 ...*O*

소현 쨩^^^ 2009. 2. 22. 06:06

추기경님, 저도 웃으며 투병하겠습니다

2009년 2월 17일(화) 2:52 [중앙일보]

[중앙일보 이경희]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시인 이해인(64·사진) 수녀가 김수환 추기경 가시는 길에 애도의 말을 전합니다. 지난해 7월 암 수술을 받은 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을 구술로 받았습니다.

정리=이경희 기자<DUNGLE@JOONGANG.CO.KR>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TV를 틀어놓고 추기경님의 흔적을 남김없이 눈과 귀에 담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너무나 슬픕니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이별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추기경님도 환자고, 저도 환자였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반년 이상 병원에 머무셨습니다. 저 역시 지난해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입원해서 같은 층을 쓴 적도 있습니다. 그때 추기경님께서는 휠체어를 타고 제 병실로 놀러 오시곤 했습니다. 저 역시 가끔 추기경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선 비몽사몽 앓으시는 와중에 영어로 “하우 두유 필 디스 모닝?(How do you feel this morning?) 아임 파인 생큐(I’m fine, thank you)”라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일부러 “아이 러브 유”나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란 말씀을 던지시곤 빙긋이 웃으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더 잡수시라고 말씀드리면 “시인이 먹으라니까 더 먹어야지”라고 응대하셨습니다.

암 투병하는 제게 “항암치료를 견뎌내다니 대단하다”며 칭찬도 하셨습니다. 병석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던 추기경님께서 어느 날 예쁜 모자를 쓰고 제 병실을 찾으셨습니다. 좋아 보이신다고 말씀드리자 “내 원래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오”라며 웃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선 고통 중에도 모든 대답을 유머 속에서 하셨습니다.

추기경님은 일생의 지표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로 삼으셨습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사셨던 추기경님께서는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그리 사셨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아픈 사람까지도 보듬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는, 한 인간으로서 골고루 햇살을 비추는 햇빛 같은 분이었습니다. 어버이로서 스승으로서 고루 덕망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떠남이 있다는 걸 저는 병석에서 더 분명히 느낍니다. 죽음이란 삶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 그러나 그 길에도 마침의 점이 있다는 것을 추기경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선 하루 한 순간을 소중히 하고 최선을 다해 마지막인 듯 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가셨습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교훈을 그분의 죽음이 줍니다.

인품으로써, 보편적인 사랑으로써 일하시던 추기경님.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아직은 눈물이 흐릅니다. 저도 웃으며 투병하겠습니다. 하루하루 겸손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추기경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은

평생 어렵고 약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종교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일생을 주시평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대구의 한 가톨릭 집안에서 5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김 추기경 집안의 신앙심은 조부가 1868년 무진박해때 순교했을 정도로 독실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부친을 여의고 가정형편도 어려웠지만 순교자 집안의 후손답게

모친의 권유에 따라 형과 함께 성직자의 길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김 추기경은 사제 서품을 받고

안동천주교회 주심 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6년 뒤, 시골 사제였던 그는 1967년 서울대교구장에 취임하고

2년 뒤인 1969년에는 드디어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47살로 전세계 추기경 136명 가운데 최연소자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시절부터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면서 교회 쇄신과 현실 참여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와 궤를 같이 했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 : 빨리 우리나라가 민주화돼서 정치적 문제는 이제 말하지 않고

사제 본연의 모습에서 성경말씀을 더 읽고, 더 묵상하고,

더 말하게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정말 있었죠.]


수요일 오후 입니다...

 

수수하고 수려한 마음으로

 

추기경님을 생각 합니다.

 

출처 : 꽃반지사랑
글쓴이 : 스테파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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