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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장 모임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또 어느 틈엔가 홀연히 사라지시는 우리들의 큰언니, 소현짱님을 만났다. 젊은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바쁘고, 더 건강하고, 더 보람 있게 지내는 모습에 보는 이가 늘 감탄하게 되는 님은, 구태여 호적상의 연세를 여쭤 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다.
소현짱님은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자인 ‘항사모’에서 부산의 각종 현안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이나 캠페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 홍익봉사단에 속한 모임이다. 이 홍익봉사단에 속한 또 다른 단체인 부산에서 자생한 나눔가게(아래 사진)의 동구의 2,3호점의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수익금은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을 돕는 데 쓰며, 이월상품을 비롯한 의류, 책, 일용상품 등을 기증받아 판매한다. 그뿐인가. 참여자치시민연대의 공동대표로서, 시민네트워크 등과 연계하여 선거 캠페인도 한다.
 헉헉...이쯤에서 벌써 숨이 차는데, 세상에, 이걸로 끝이 아니란다. 일주일 내내 자원봉사 일정이 그야말로 빽빽한데....월요일은 유엔공원기념관에서 네 시간씩 설명봉사, 화요일은 삼 년째 메리놀병원에서 두 시간씩 도서관 봉사,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금요일과 일요일에는 부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안내봉사를 하는가 하면, 토요일에는 을숙도에 있는 에코센터에서 또 안내봉사. 대체 몸이 몇 개이신가? 또 체력은?
소현짱님의 평생에 걸친 자원봉사 활동의 시작은 대학시절에 주변의 아픈 사람이 갑자기 수술시 혈액이 필요하다고 하는 걸 보고 헌혈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는 헌혈이 드물 때인데도 무려 100회 이상 했다고 한다. 결혼하고 다시 시작하여 20년 이상 계속하였고, 지금은 65세 이상이라고 할 수가 없어서 대신 헌혈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신다고. 물론 시신기증서약도 일찌감치 20년 전쯤에 하셨단다. 70년대에는 어머니의용소방대 활동을 십여 년 했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건 2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이다.
소현짱님이 참여했던 행사들 가운데 몇 개를 들어보면, 우선 거창국제연극제가 있다. 연극은 영화제와 달리 행사 기간이 한 달씩 계속되기 때문에 외지에서 오래 머무는 게 힘들었고, 연극무대는 참가국마다 따로 새로 설치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극을 영화보다 더 좋아한다. 하지만 봉사자들에 대한 대우는 숙식을 해결해 주고 매우 좋단다.
 전주국제영화제(위 사진)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달리 규모는 작으나 수준이 매우 높다. 주로 단편영화, 독립영화 등 흥행과 무관한 차원 높은 작품들이 많이 온다. 바스프 행사는 부산아시아단평영화제를 말하는데, 매년 5월에 경성대에서 열린다. 이름이 지금은 부산국제단편영화제로 바뀌었다. 배우 조재현이나 봉준호 감독,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등이 이 영화제로 뜬 스타들이라고. 그런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또 새터민(탈북자들) 지원센터 후원으로 부산시민들과 새터민들 각각 열다섯 명씩 선정하여 함께 여행을 하며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행사인 남북여성 남도여행길 행사에 해마다 참석하고 있다. 처음에는 새터민들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지만 지금은 서로 교분을 맺고 그들의 멘토가 되어 주는 게 보람 있는 일이라고. 또한 재밌게도 소현짱님은 유일한 여성 명예특전단이다. 까페 활동을 하다가 특전단사회봉사대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태안반도 사고 시 같이 청소를 하러 갔더니 가장 위험한 오지를 특전단을 위해 남겨 놓아서 고생을 좀 더 쎄게 했다며 웃는다.
소현짱님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통령상을 지역발전에 기여했다는 공로로 받았고, 한명숙 총리에게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과분하다고 생각하여 사양도 했으나, 상을 받은 후 더욱 책임이 무거워졌고 공인으로서의 처신과 언행에 더 조심하게 되었다고. 자원봉사를 하지 않는 날은 부산일보사에서 하는 성인교육기관인 부일여성대학에서 전국의 저명인사들의 초빙 강연이나 창작교실, 독서클럽, 답사여행 등을 즐긴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온 이후 경실련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경실련이 한 때 어려워졌을 때 당시 회장이 소현짱님을 ‘스카우트’해서 직책을 맡기고 회원확보 임무를 맡겼다. 백오십 명 넘는 회원을 확보하면서 5,6년간 집행위원을 지냈다. 이후 3,4년 전에 다시 와해 위기가 왔을 때부터는 일반회원으로 지내고 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에서는 작년부터 공동대표를 하고 있다.
 (참여자치연대의 의정행정감시단)
소현짱님은 ‘원조유빠’다. 2003년에 서울에서 <시민사랑>이 생겼을 때 가입하고 서울까지 밤차 타고 종종 가서 첨맘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시민광장은 2007년에 가입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시민광장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이전에는 김대중 선생의 ‘빠’여서, 서울의 집이 있던 양재동에서 보라매공원까지 가서 연설을 들은 뒤 군중들과 함께 걸어서 제1한강교를 건너 서울역까지 행진하거나 연설을 들으러 대구까지 가기도 하였는데, 고등학생이던 아들이 엄마 제발 좀 고만하라고 애원을 하던 추억도 있을 정도란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늘 긍정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뿐이라고 화답한다. 98년부터 인터넷을 시작했고, 2003년부터는 싸이질(?)도 시작했다고. 이메일들을 100여개의 폴더로 나누어 자료로 보관하고 있고, 가입해서 활동하는 까페만 네이버와 다음에 걸쳐 90개가 넘는다고. 시민광장 게시판에 자주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루에 30개 정도만 훑어 봐도 2,3시간 걸린단다. 시립미술관에서는 도슨트(미술작품을 전문적으로 설명해 주는 안내자) 활동을 7년간 했고, 부산문화회관에서도 공연 안내 봉사를 해왔기 때문에 정치나 문화 등과 관련된 까페들이 주로 가는 곳. MBC 방송국 문화네트워크에서는 1기 강의를 받고 2기부터는 자원봉사에 대한 강의를 직접 했고,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도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그런 활동을 다 해낼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있으시냐는 질문에 모든 게 정신력이라고.
뵐 때마다 늘 푸근한 미소와 자분자분한 말솜씨를 보여 주시는 우리들의 큰언니 소현짱님. 참으로 존경스럽고 감탄스러운 삶을 살아오신 분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만남이었다. 늘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봉사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실 것을 믿는다.
블로그 주소 : http://blog.daum.net/korea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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