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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연중 제4주간 수요일 ...***

소현 쨩^^^ 2009. 2. 5.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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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수요일                                     2009.  2.   4. 그 무렵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마르 6,1~6)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도 무시당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섭섭함이 배인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무시당했던 체험이 많습니다. 가족이 그렇게 했고, 이웃이 그렇게 했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별 뜻 없이 말하고 행동했지만 아픔이 되고 상처가 된 기억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깎아내립니다. 편견을 갖고 대합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평소의 습관일 뿐입니다. 좋은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습관입니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많이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까지도 오해할 수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허물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허물이 있는’ 존재입니다. ‘어떤 사람’ 때문에 신앙생활이 실망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면서 믿음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지내면 쉽게 허물이 보입니다. 뛰어난 사람도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주는 상처에 너무 예민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가족에게 상처 주며 사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하면 가끔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날로 새로워라 -최연석 목사- “우리와 왕년에 한솥밥을 먹던 친구 아닌가. 맞아, 아무개 집 큰아들이야. 똑똑하네그려. 저 연설하는 것 보게. 이 사람아, 똑똑하면 뭘 해. 우리와 근본이 같은걸.”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이 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나더라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세상 인심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무슨 학교 출신이 대통령이 된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풍토를 보더라도 2천 년 전 주님의 고향에서 들었던 소리가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싫은 것 가운데 하나가 새 학기가 되어 가정환경을 조사할 때였다. 부모의 직업을 묻는데, 당시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당시 목수는 ‘노가다’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떻게 그 어려운 말을 생각했는지 나는 ‘노동’이라고 대답했다. ‘노동’이 ‘노가다’보다 더 그럴듯한 말이라는 영악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내가 영악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당시 풍토에서 직업의 귀천이 심했던 것이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 작은아버지 세 분, 작은 형 등 합해서 목수가 다섯이나 되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 한마디에 당시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그리고 조금도 그 내용은 변하지 않고 2천 년이나 계속된 왜곡된 가치관이 그대로 담겨 있다. 거듭나야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은 바로 이런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이 거듭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니코데모도 근심하며 물러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쓰는 이 말을 덧붙인다. “사람은 죽어야 지옥을 안다.” 우리 초등학교 교훈이 ‘날로 새로워라’였다. 나는 그 교훈의 의미를 요즘에야 조금 알아들을 듯하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교훈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눈의 비늘을 떼지 않으면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을 지금도 목수라고, 전라도나 경상도라고, 상고를 나왔다고, 교양이 없다고, 미국을 반대한다고 우습게 여기지 않을까?

출처 : 꽃반지사랑
글쓴이 : 스테파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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