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1. 교의형성의 역사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무염시태)' 교의는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에 의해 선포되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었다"(DS 2803). 이 교의는 마리아가 존재하는 첫 순간부터 원죄와 그 과실에 빠져들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비록 성서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이 교의가 초대교회로부터의 긴 전승을 배경으로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초대 교부들은 성서의 몇몇 구절을 통해 마리아의 탁월한 성덕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명을 통한 마리아의 업적이 죄와 불순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스띠노는 처음으로 에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마리아의 무죄성을 암시하였다. 아타나시오나 에프렘 부제도 육화의 신비와 관련하여 마리아의 완벽한 동정성과 무죄함을 표현하였다. 특히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하느님께 동정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화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깨끗해졌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에 힘을 더했다. 이후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를 통해서 마리아의 전적인 성성(聖性)과 무죄성에 대한 명제가 일차적으로 서방교회에서 관철되고, 오랜 발전을 거친 끝에 동방교회에서도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동방교회는 7세기부터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축일을 지내오고 있다.
12-13세기가 되자 스콜라 철학자들은 마리아의 무원죄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했다. 중세 가톨릭 신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inas, 1225-1274)가 이를 부인하는 쪽이었다면, 또 다른 탁월한 신학자였던 둔스 스코투스(Duns Skotus, 1266-1308)는 이를 열렬히 옹호하는 편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른 교부들처럼 마리아의 완벽한 성덕과 무죄함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적 원죄 이론을 따랐다. 그래서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된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그리스도로부터 힘입은 은총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오히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경륜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같은 입장의 차이는 이후에도 토마스 아퀴나스의 도미니코회 회원과 둔스 스코투스의 프란치스코회 회원간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15세기에 들어 비록 실재적인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무염시태가 신앙조항으로 선포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염시태를 반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자 식스토 4세는 회칙 "Grave nimis"를 선포함으로써 더 이상의 논쟁을 금지시켰다. 트렌트 공의회(1545-1563)는 종교개혁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논쟁거리인 '무염시태'를 다루지 않음으로써 식스토 4세의 중립적인 노선을 따랐다. 다만 원죄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반적인 원죄 이론에 마리아는 포함시키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삽입했다. 1667년부터 1799년까지 13명의 교황들 역시 선대의 교황들의 입장을 따라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 전체의 분위기는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해야 한다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18세기의 비투스 쉐퍼(Vitus Scheffer)는 성모무염시태에 대한 교리가 창세기에 나타나 있음을 제시하기 위하여 일곱권이나 되는 책을 저술했다. 1830년의 '기적의 메달' 성모 발현은 신자들로 하여금 '무염시태'에 대한 관심을 크게 높여주었고, 1849년 10명의 프랑스 주교들은 공동 서한으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교의 선포를 청원했다. 또한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한 책들이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1843년 프랑스 국가 교회의 총책임자였던 추기경 람브루스키니(lambruschini)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호의적인 성서, 전승, 교황청 문헌 등을 모두 수집하여 책으로 발간하였다. 또 예수회의 죠반니 바티스타 페론(Giovanni Battista Perrone)는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하여]라는 책을 펴내어 큰 인기를 모았다.
성모 신심이 뛰었난던 비오 9세가 교황이 되자 교의 선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가 착수됐다. 그는 신학 자문위원회와 추기경 자문위원회를 소집하여 의견을 수렴했다. 대다수 주교들의 호의적인 의향과 추기경단의 동의를 얻은 비오 9세는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축일을 맞이하여 회칙 [Ineffabilis Deus]를 선포하였다.
<출처 : 마리아동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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