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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로사리오(1)

소현 쨩^^^ 2008. 12. 31. 03:08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로사리오

 

로사리오Rosarium는 장미 화관, 장미 꽃다발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로 묵주 혹은 묵주의 기도를 가리킨다. 로사리오는 염경기도(소리 내어 하는 기도)와 묵상기도(하단 발췌글 참고)로 이루어진다. 묵주는 십자가를 정점으로 하여 큰 구슬 6개와 작은 구슬 53개가 원으로 꿰어져 있고 기도를 할 때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바퀴씩 돌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께 대한 묵상의 길이 끝없이 이어짐을 뜻한다. 또한 묵주는 하느님 아버지께 우리 모두를 묶어두는 사슬이고 모든 교우들이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자매로 친교를 맺고 사는 것을 상징한다. 묵상기도의 내용은 구원의 역사이며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 등으로 구분된다. 각 신비는 5개의 묵상 주제로 이루어졌으므로 모두 15개의 주제가 되어 염경기도 15단을 하며 각 단마다 각 주제를 묵상하게 된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것은 주님의 삶을 본받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로사리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염경기도를 드리는 것이며, 가장 먼저 가장 깊은 체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신 성모님을 통하여 그분의 신비에 접근하고 친밀해지며, 구원의 신비에 일치하면서, 성모님처럼 인류 구원의 협조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성모께서는 루르드Lourdes(1858), 파티마Fatima(1917) 등에서 발현하여 로사리오를 당부하였다(파티마 발현 이후 구원의 기도가 추가됨). 교회는 로사리오 축일 및 성월을 정하여 로사리오에 의한 신심을 장려하고 있다.

 

* 묵주기도나 묵주를 이용하는 다른 헌신의 기도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관상으로 이끌어 줍니다. 묵주기도를 통하여 관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묵주기도 중에 아마도 아무 생각도 없거나 잠깐 잠을 잔 것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잠깐 잠을 잔 것이 아니라면 기도 중에 기도하는 사람을 하느님께서 잠시 침묵 속으로 부르시어 사랑을 속삭여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묵상은 묵상 끝에 하느님 안에 쉬는 상태로 가기 쉽게 해줍니다. 묵주기도를 계속 반복하다 보면 거룩한 독서에서 응답 단계의 기도처럼 되고 점차로 그리스도의 신비 안으로 들어갑니다. 손과 입 그리고 마음으로 하는 기도이지만 나중에는 가슴과 영혼의 기도가 됩니다. 즉 관상적 기도가 됩니다. 세상 여러 곳에 발현하고 계시는 성모님은 가슴으로 하는 기도로 묵주기도를 하라고 권하십니다. 이것은 성모님이 관상기도로 묵주기도를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즉 관상기도를 하라는 권고입니다. 묵주기도를 하루 종일 하는 사람들은 그 삶이 어느새 관상적인 삶으로 인도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신비를 묵상하는 것과 정감적 기도와 같이 기도를 반복하는 특성으로 해서 관상의 상태로 쉽게 들어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15분이면 충분히 바칠 수 있는 5단의 묵주기도를 30분도 지나고 한 시간도 지나는 체험을 한 사람들은 이미 관상기도의 체험을 한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들은 향심기도를 시작함으로써 관상기도를 빨리 수련할 수 있습니다.

(출처: 관상기도의 이해와 실제, 엄무광, 성바오로출판사)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ROSARIUM VIRGINIS MARIAE

차 례

서 론

제1장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제2장 그리스도의 신비 - 성모님의 신비

제3장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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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1.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는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 아래 제2천년기에 차츰 그 모습을 갖추었으며 많은 성인들의 사랑을 받고 교도권이 권장해 온 기도입니다. 단순하지만 심오한 이 기도는 커다란 효과를 지닌 기도로서 이제 막 시작된 제3천년기에도 성덕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그리스도 신앙의 영적인 여정에 잘 어울립니다. 그 신앙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본래의 힘을 조금도 잃지 않고, 하느님 영의 인도로 '깊은 데로 가서' 온 세상에 그리스도를 외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요한 14,6) '인류 역사의 목적이시고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1)이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또 구원자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는 분명히 성모 신심의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그 소박한 구조 속에 모든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으므로 마치 복음의 요약과 같습니다.2) 묵주기도는 또한 당신 동정녀의 품에서 시작된 강생의 구원 활동을 두고 바치신 바로 성모님의 기도이며 성모님의 영원한 노래인 마니피캇을 반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묵주기도를 통하여 성모님의 학교에 앉아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그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로 구세주 어머니의 손에서 받듯이 믿는 신자는 묵주기도를 통하여 풍성한 은총을 얻기 때문입니다.

 

교황들과 묵주기도

 

2. 저의 많은 선임자들께서도 이 기도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레오 13세를 특별히 언급하여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1883년 9월 1일에 회칙 「최고 사도직」(Supremi Apostolatus Officio)을3) 발표하시고 묵주기도가 사회악을 물리치는 효과적인 영적 무기라는 드높은 선언을 하셨습니다. 이는 또한 성모님의 이 기도에 관한 다른 많은 발언들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묵주기도를 특히 장려하신 최근의 교황들 가운데에서 저는 교황 요한 23세 복자4)와 교황 바오로 6세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오로 6세께서는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묵주기도의 복음적 특성과 그리스도 중심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저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묵주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권장해 왔습니다. 묵주기도는 어릴 때부터 저의 영성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최근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특히 갈바리아 순례지에서 이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저는 언제나 묵주기도를 바쳐 왔습니다. 저의 모든 근심을 묵주기도에 의탁하였으며 그 안에서 저는 언제나 커다란 위안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24년 전인 1978년 10월 29일에, 제가 베드로 좌에 선출된 지 두 주도 채 안 되어 제 마음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묵주기도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는 놀라운 기도입니다! 그 단순함과 심오함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묵주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의 마지막 장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묵상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송을 바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이 영혼의 눈앞으로 지나갑니다. 그 사건들이 환희와 고통과 영광의 신비의 요약 안에 모아지고, 우리는 이를테면 성모님의 마음을 통하여 바로 예수님과 생생하게 결합됩니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개인과 가정과 국가와 교회와 온 인류의 삶을 이루는 모든 사건, 곧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웃들, 특히 우리에게 가까운 이웃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일들을 마음에 담고 묵주기도 한단 한단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한 묵주기도는 인생의 그러한 맥박을 드러냅니다."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바로 이 말씀으로 저의 교황직 첫 해를 묵주기도의 일상 주기에 맞추었습니다. 오늘 저는 베드로 후계자의 직무 25년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저는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Magnificat anima mea Dominum!) 저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의 말씀으로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하며, 저의 베드로 직무를 성모님의 보호에 맡겨 드립니다. 모두 임의 것 Totus Tuus!

 

묵주기도의 해 (2002.10 - 2003.10)

 

3. 이러한 까닭에 저는 대희년 경축을 마치며 하느님 백성에게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6)하도록 권고하였던 교황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의 묵상에 이어, 마치 그 교서에 성모님의 화관을 두르듯이, 묵주기도에 관한 묵상을 풀이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님과 일치하여 성모님의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권고하려는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은 바로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권고에 더 큰 무게를 두고 또 앞서 말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발표 120주년을 계기로 삼아 저는 앞으로 한 해 동안 여러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 묵주기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장려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는 올해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한 해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목 제안을 각 교회 공동체의 주도에 맡깁니다. 이는 개별 교회의 사목 계획을 방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완성하고 공고히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제안이 즉각 기꺼이 받아들여지리라 믿습니다. 묵주기도가 그 충만한 의미를 되찾을 때 그리스도인 생활의 핵심에 이르게 됩니다. 묵주기도는 개인적 관상과 하느님 백성의 교육뿐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하여 날마다 영성 훈련의 풍부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우리 시대의 교회에 마련해 주신 "위대한 은총"이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40주년(2002년 10월 11일)이라는 또 다른 기념일의 기쁨으로 묵주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더욱 기쁩니다.7)

 

묵주기도에 대한 반대

 

4.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제안은 시기적절한 것이 분명합니다. 먼저 묵주기도가 맞고 있는 일종의 위기에 시급히 대처하여야 합니다. 묵주기도는 오늘날의 역사적 신학적 상황에서 그 가치가 부당하게 평가절하 되어 젊은 세대에게 더 이상 가르쳐지지 않을 위험도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적절히 강조하였던 전례의 중심성은 필연적으로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축소시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분명하게 밝히셨듯이 묵주기도는 전례와 상충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전례를 뒷받침합니다. 묵주기도는 우리를 전례로 훌륭하게 이끌어 주는 동시에 전례를 충실하게 반영하므로 전례에 내적으로 충만히 참여하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묵주기도가 그 분명한 마리아 성격 때문에 일치운동과 어긋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분명히 묵주기도는 천주의 성모님께 대한 공경의 전망 안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공의회가 분명히 밝혔듯이 마리아 공경은 "어머니께서 존경을 받으실 때에 그 아드님께서… 바르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게 하도록"8)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이끄는 신심입니다. 묵주기도를 바르게 활성화시킨다면 묵주기도는 교회 일치운동에 분명히 도움이 되며 결코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상의 길

 

5. 그러나 묵주기도 생활을 힘껏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가 교황 교서 「새 천년기」에서 참된 '성덕의 훈련'으로 제시하였던,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관상하는 저 임무를 도와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덕의 훈련에는 "기도가 앞서는 그리스도인 정신이 필요합니다."9) 새로운 영성의 요구가 현대 사회의 수많은 모순 속에서 흐려지기는 하지만 다른 종교들의 영향 때문에도 영성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솟아오르고 있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참된 기도의 학교'10)가 되어야 합니다. 묵주기도는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방 세계에서 생겨나 발전한 이 기도는 전형적인 묵상기도이며, 어느 정도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토양에서 피어난 '마음 기도'나 '예수님 기도'에 해당합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6. 지금의 역사적 상황이 묵주기도의 부흥에 커다란 효과를 더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 평화의 은총을 간청하여야 할 절박한 필요가 있습니다. 선임 교황들과 저 자신이 묵주기도는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거듭거듭 밝혔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의 저 가공할 재앙으로 시작되고 거의 날마다 세계 도처에서 새로운 폭력과 유혈 사태를 목격하는 이 천년기의 벽두에 묵주기도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관상하는 일에 몰입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셨기"(에페 2,14 참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화 증진을 자신의 의무로 여기는 사람은 틀림없이 묵주기도를 명백한 의무로 알고 바치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땅, 아직도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나자렛 예수님의 땅인 성지의 평화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현대의 또 다른 위기와 관련해서도 투신과 기도가 요구됩니다. 바로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의 위기입니다. 가정은 이념과 실제에서 날마다 점점 더 붕괴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이 때문에 우리 시대의 필수적 근본 제도인 가정의 미래는 물론 사회 전체의 운명이 위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가정 사목이라는 폭넓은 영역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에 묵주기도를 되살린다면 파멸로 치닫는 이 시대의 위기를 막아내는 데에 효과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7. 수많은 표징이 가리켜 주듯이 오늘날에도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바로 이 묵주기도를 통하여 어머니로서 우리를 끝까지 돌보고자 하십니다. 구세주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 가장 사랑하시던 제자를 가리키며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하고 말씀하심으로써 교회의 모든 자녀를 당신 어머니의 보호에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어머니께서 하느님 백성이 이러한 형태의 관상 기도를 권고하시는 당신의 목소리를 똑같이 깨닫게 하시고자 당신의 현존을 보여 주셨던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사건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교회 권위의 인정을 받은 루르드와 파티마의 발현을 그 이름을 들어 기억하고자 합니다.11) 이들 순례지에는 위안과 희망을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증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8. 묵주기도 안에서 성덕에 이르는 참된 길을 찾은 수많은 성인들의 이름을 다 열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묵주기도에 관한 훌륭한 책을 쓴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성인12)과, 우리에게 더욱 친근하고 최근에 제가 시성의 기쁨을 누렸던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신부는 특별히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바르톨로 롱고 복자는 묵주기도의 참된 사도로서 특별한 은사를 지녔습니다. 그분 성덕의 길은 "묵주기도를 전파하는 사람은 누구든 구원을 받는다!"13) 하는 마음 속 깊이 깨달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분은 기원 후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매몰되어 오랜 세기 뒤에 그 잿더미에서 고대 인류의 명암을 보여 주는 증거가 발굴되는 폼페이에, 그 전에 그리스도의 소식이 가닿지도 못한 이 고대 도시의 폐허 위에 거룩한 묵주기도의 성모님께 성전을 봉헌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깨달았습니다. 바르톨로 롱고는 평생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특히 '15주간 토요 묵주기도'를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관상적인 묵주기도의 정신을 증진하였으며 '묵주기도의 교황'이신 레오 13세의 커다란 격려와 후원을 받았습니다.

 

제1장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태양처럼 빛나는 얼굴

 

9. "그 때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났다"(마태 17,2). 세 사도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구세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변모 장면은 그리스도 관상의 한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켜 그분 인성의 일상사와 고통스런 여정 안에서 그분의 신비를 깨닫고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신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영원히 드러난 신적인 광채를 알아보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제자의 임무이며 따라서 우리 각자의 임무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생명의 신비를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 늘 새롭게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바오로 성인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광스러운 상태에서 더욱 영광스러운 상태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고린 3,18)

 

관상의 모범이신 성모님

 

10. 그리스도 관상에서 성모님께서는 그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성자의 얼굴은 특별히 성모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모님의 태중에서 자라시면서 인간적으로 그분과 닮은 외모를 물려받으셨는데 이 닮음은 한층 더 돈독한 영적인 결합도 이끌어 냅니다. 그 누구도 성모님만큼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았던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의 눈은 주님의 탄생 예고를 받아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에 이미 예수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몇 달 뒤에 성모님께서는 그분의 현존을 느끼시고 그분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낳으시고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히시며"(루가 2,7) 성모님께서는 당신 육신의 눈으로 아드님의 얼굴을 바라보실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언제나 흠숭과 경탄에 가득 찬 성모님의 눈길은 예수님을 떠난 적이 결코 없습니다. 때로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시고 "얘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루가 2,48)고 하셨을 때처럼 물어 보는 눈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요한 2,5 참조)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더욱이 드러나지 않는 감정을 깨닫고 그 뜻을 내다볼 수 있는 꿰뚫어 보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때 그 눈길은 특히 십자가 아래에서처럼 슬픔의 눈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어느 모로 산고를 겪는 어머니의 눈길이었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외아드님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드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를 진정한 새 아들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9,26-27 참조). 그리고 부활절 새벽에는 부활의 기쁨에 빛나는 눈길이었을 것이고, 마침내 오순절에는 성령을 넘치도록 받아 불타는 눈길이었을 것입니다(사도 1,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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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섬돌선교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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