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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에...오마이신문과..서울RTV방송국에서...기사화해줌...

소현 쨩^^^ 2007. 8. 22. 21:01

2006년 5월 18일 (목) 08:43   오마이뉴스

영화제서 '이모님' 모르면 간첩!

[오마이뉴스 마혜원 기자] 부산 영화판에서 '이모님'을 모르면 간첩이다. 각종 영화제의 단골 자원봉사자 최영애(64) 할머니. 최 할머니는 전국의 유명 영화제에는 어디건 빠지지 않고 나타나 이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모님'으로 통한다.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린 제7회 전주 국제영화제에서도 어김없이 스태프 복장의 최영애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최영애 할머니가 각종 봉사활동에 뛰어든 지는 어림잡아 15년이 넘었다. 영화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것만도 10년째다. 지난 97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작된 영화제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여덟 번, 전주국제영화제 여섯 번,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 세 번 등 영화제 자원봉사 '최고령 최다수 참여자'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때문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명예 자원봉사자'라는 이름까지 받았다.

"지금까지 전주국제영화제에 여섯 번째 참여 하게 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하다보니까 이번에는 영화제 조직위에서 '명예자원봉사자'로 선정해 많은 배려를 해줬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죠."

▲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최영애 할머니
ⓒ2006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 자원봉사단
전국의 영화제를 자원봉사자로 뛰다보니, 유명 감독들을 만날 기회도 많았다. 최 할머니는 "처음 봤을 땐 촌사람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적인 유명한 감독이 되어 뿌듯했다"고 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김기덕 감독을 회상했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인 감독으로는 대만의 차이밍량 감독을 꼽았다. "하루에 열 번을 봐도 열 번을 인사하더라고, 동양권 사람이라 예의가 바른가보다 생각했어요."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사연에 대해 최 할머니는 "평생 우리 가족이 별 탈 없이 잘 살아온 것이 고맙고, 그래서 좋은 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물론 평생을 전업주부로 세 아들과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지내온 최 할머니에게 그간 못했던 '사회활동'은 늘그막에 만난 새로운 기회이고 인생이기도 했다. 슬하에 둔 세 아들은 모두 장성해서 가정을 꾸렸다. 동갑내기 남편은 사업차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다. 현재 부산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지만 외로울 시간도 없다. 휴일이면 가끔씩 83세의 친정어머니를 방문하는 것도 시간을 쪼개야 가능하다.

▲ 제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안내 책자를 나눠주는 최영애 할머니
ⓒ2006 시민방송 RTV
"항상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새로운 것을 배워야 늘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죠."

최 할머니는 학생들에게 "이모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야 겨우 15년~16년 됐는데, 너희들은 젊었을 때 더 일찍 시작했으니까, 나보다 더 잘 살 것"이라고 엉덩이를 두드려 준단다. 최 할머니는 이렇게 젊은 학생들과 만나는 것이 즐겁다. 빡빡한 스케줄을 입력해 놓은 PDA에서부터, 핸드폰 문자메시지, 싸이월드 홈피까지 64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첨단 소품들을 활용하는 최 할머니는 뭐든 새로운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배운다.

인생에 경륜이 쌓여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져 남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이순'의 나이를 몸소 실천하는 최 할머니에게는 못할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앞으로 지금까지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모아놓은 자료들을 가지고 개인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하고 싶은 게 꿈이라는 최 할머니는 "훌륭한 젊은 사람들도 많은데 자꾸 나만 인터뷰하면 어떻게 하냐"면서 "자라나는 좋은 후배들한테도 기회를 줘야하는데, 혼자 독식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마혜원 기자


덧붙이는 글
* 최영애 할머니의 영상은 ‘우리 사는 이야기’ 71회를 통해 소개됩니다. 시민방송 RTV(스카이라이프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