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2009. 1. 11
그때에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7~11)
오늘의 묵상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인간은 존엄성을 지닙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사람이 되게 하신 것도 사람을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인간에게서 사랑을 기대하다가 오히려 상처투성이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 모든 상처와 고통을 이겨 내게 합니다.
언제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요? 큰 숙제입니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김태오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요한의 세례는 죄를 씻는 회개의 세례이기에,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셨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선 두 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예수님 자신의 의지이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자신의 사명을 확고히 하고 싶지 않았을까?
집과 고향을 떠나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가기 위해
첫 번째 길을 세례로 선택하신 것이 아닐까?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마음을 새롭게 하고
자신에게 주어질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않았겠는가?
다음으로는 예수님 정체성이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목수로 사시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셨을 것이다.
이제 때가 되어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이 드러나리라는 희망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의 정체성은 세례로 더 분명해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신다.
이는 새로운 창조를 알리는 것으로 보여진다. 창세기 1장 2절을 보면
천지창조의 시작에 아직 형태도 갖추고 있지 않은 세상에
‘하느님의 영’이 휘돌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내려오는 성령이시다.
세상의 창조에 함께한 하느님의 영이 내림으로써
복음서는 예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시는 구세주이심을
분명히 한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한편 비둘기는 노아의 홍수 후에 새로운 시대,
평화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성서적 상징인데,
예수님의 왕국이 바로 그러하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세례는 새 생명의 상징이다.
당신 스스로 생명의 근원인 물속에 잠김으로써
당신의 이름으로 베풀어질 세례에 의한 구원을 예표 하셨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하기를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간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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