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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띠생 믿음직한 성격

소현 쨩^^^ 2009. 1. 9. 07:12

“충직과 근면·성실 상징”
 

오랜 세월 인간의 든든한 동반자… 소띠생 믿음직한 성격

 

 

옛사람들은 달이 없다가 자라서 보름달로 차는 모습을 보고 성장과 풍요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소가 초승달과 비슷한 모양의 뿔을 가졌기 때문에 신께 바쳐 풍성한 태평을 빌게 됐다.

예기(禮記)에 돼지 양 닭 꿩 등을 희생동물(犧牲動物)로 들고 있는데, 그 중 소를 맨 앞에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소를 가장 크게 친 것 같다.

 

소, 태평 기원 희생제물

소는 한반도에서 일찍부터 사육되기 시작했다. 기원전 1∼2세기경 유적으로 추정되는 김해 조개무지에서 소의 치아가 발견된 것이 그 증좌(證左)다. 부여에서는 소를 비롯한 여섯 가축, 즉 육축(六畜)을 사육하고 그것을 관명으로 사용했다.[삼국지 위지 동이전]

우리 역사에 소는 길한 징조로 등장한다. "백제 시조 온조왕 25년에 한성 사람 집에서 말이 머리가 하나고 몸이 둘인 소를 낳았다. 일관(日官)이 이것은 대왕이 이웃나라를 함께 다스릴 징조라고 아뢰어 왕이 기뻐하며 진한과 마한을 병합할 뜻을 굳혔다고 한다."[삼국사기]

이렇게 신성시되던 소가 농경에 이용되면서 일반 가정에 널리 보급됐다. 신석기시대에 소의 가축화로 농사의 발달이 가속화됐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3∼4세기경 쟁기 등의 농기구를 만들어 전답을 갈고 수레를 제작하여 탄 것이 추정되는데, 이 때 소를 이용한 것이 확실시된다.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한 근면의 상징

30년 전만 해도 우리 농가에서는 소 한 마리씩을 기르며 귀한 존재로 여겼다. 소는 농사일에 꼭 필요한 가축일 뿐만 아니라 값이 비싸서 집안의 큰 재산이었다. 식구(食口)는 한집에 사는 가족을 뜻하고 생구(生口)는 한집에 동거하는 종과 머슴을 가리키는데, 소도 생구로 칠 만큼 소중히 여겼다.

황희 정승이 젊었을 때 길을 가다가 누렁소랑 검정소가 있길래, 농부한테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하오?" 라고 묻자 농부가 귓속말로 "검정소가 더 잘 하오" 하길래, 왜 귓속말로 하느냐 하자, "사람도 기분 나쁜 말 들으면 기분이 안 좋은데 하물며 소도 그렇지 않겠는가?"라고 농부가 말해서 황희 정승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것도 소를 사람처럼 대우한 예화다.

 

소의 천국 '인도'… 소의 신성성 충직성

인도 사람들은 소를 경작에 이용하고 우유를 짜서 먹고, 심지어 똥까지 연료로 사용하는 한편 힌두교도들은 성우(聖牛)로 숭배하며 불살생(不殺生)의 도리를 지킨다. 이와 다르게 우리는 소를 소중하고 신성하게 여기지만 숭배하지 않고 즐겨 먹는다. 고기, 내장, 피는 물론 뼈까지 고와서 곰탕으로 철저하게 먹는다.

계모의 구박으로 콩쥐가 혼자서 밭을 갈다가 호미가 부러져서 울고 있을 때 하늘에서 검은 소가 내려와서 밭을 다 갈아주었다는 '콩쥐 팥쥐' 이야기는 소의 신성성과 실용성이 묘하게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소가 이처럼 사람을 도운 것은 이야기에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있음직한 전설이 전한다. 집에 기르는 소가 주인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를 싸워 물리쳐서 그 공을 기리어 고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는 '의우총(義牛塚)' 전설은 경상북도 상주군 낙동면과 선산군 산동면에 구전되는데, 뒤의 것은 삼강행실도에 내용이 그림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소를 중히 여겼던 시대의 작품에는 자연히 소를 몰거나 타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중국에서는 주로 현자와 은자인 경우가 많다. 절의 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목동이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해 묘사한 것으로 원래 도가의 '팔우도(八牛圖)'가 불교로 넘어오면서 선사상이 담긴 두 장이 더 추가되어 지금의 '십우도(十牛圖)'가 됐다고 한다.

 

소에 얽힌 다양한 전설들

한국에서는 소를 몰거나 타는 사람이 다른 양상으로 표현되고 있어 흥미를 끈다. 신라 성덕왕대에 동해 용왕도 탐을 내었다는 절세의 미인 수로부인에게 "나를 부끄러워 아니하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고 순수한 심정으로 향가 헌화가(獻花歌)를 부른 기막힌 로맨티스트인 견우노옹(牽牛老翁)도 글자 그대로 소를 끌고 가던 늙은이요, 1년에 7월 7석 날 하루만 만나 직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견우(牽牛)도 이름 그대로 소먹이 젊은이다.

우리 선인들이 소를 영적인 것으로 믿는 풍습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정월 보름날 아침에 키에 밥과 나물과 목화씨를 얹어 놓고 소에게 주어 먼저 먹는 것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소먹이점'을 친다. 정초의 소날에는 칼질을 안 하는 금기를 지킨다. 쇠고삐를 문에 달면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고 쇠뼈를 집안에 매달아 두면 객귀가 침입하지 못한다고 한다. 소가 웃거나 우는 것을 보면 운수대통 한다고 하고, 쇠똥을 밟으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이런 길조어는 우리가 소를 좋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소띠생 믿음직스런 성격

우리 민족은 소를 농부처럼 묵묵히 일을 잘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외모부터 우리에게 호감을 준다. 소는 모습부터가 큼직하여 믿음직스럽다. 대인다운 풍모와 여유가 보인다. 굼뜨듯 하면서 끊임없이 일하는 부지런함이 있다. 겉으로는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 속에는 현자의 도량을 지니고 있다. 유순하여 인욕의 미덕을 지키지만 일단 화가 나면 눈을 부라리고 뿔로 떠받아버리는 용맹이 있다.

우리 농민들은 이런 소를 기르며 사랑하고 우리 민족 전체는 소의 미덕을 닮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소띠 사람의 운명도 좋게 풀이하고 있다. 소띠생은 믿음직스럽다고 한다. 동시에 겉으로 별로 개성이 없고 엄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로움이 잘 따르므로 집안이 부유하고 화목하다고 좋게 예언한다. 그러나 욕심과 사치가 지나치면 도리어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계도 잊지 않고 있다.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소처럼 느린 듯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정신적으로 소인화(小人化) 되어 가는 현대인들은 대인의 도량을 지닌 소의 덕성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 정 상 박 / 동아대 명예교수

출처 : 신 경사모
글쓴이 : 아름다운동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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